점성술의 역사
바그다드를 거쳐 온 점성술 — 700년의 번역
점성술의 출발점을 따라가면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끝납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테트라비블로스"를 쓰고, 그다음이 비어 있습니다. 유럽에서 이 책은 한동안 읽히지 않았습니다. 다시 읽히기까지 700년이 걸렸고, 돌아온 길은 라틴어가 아니라 아랍어였습니다.
유럽이 그리스어를 잃어버린 사이
서로마가 무너진 뒤 서유럽에서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책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읽을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필사본은 동로마와 그 너머에 남아 있었지만, 라틴어권에서는 목록 속의 제목으로만 남았습니다.
점성술이 유럽에서 사라진 것은 교회가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금지 이전에 번역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술 문헌은 언어가 끊기면 그 자리에서 멈춥니다. 계산법이 적힌 책은 더욱 그렇습니다. 줄거리는 기억으로 전해지지만 표와 수식은 그렇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바그다드가 이어받았습니다
9세기 아바스 왕조의 바그다드에서 대규모 번역 사업이 벌어집니다. 그리스어 문헌이 아랍어로 옮겨졌고, "테트라비블로스"도 이때 아랍어가 됩니다. 이후 이 책은 중세 이슬람 점성술의 가장 큰 원천이 됩니다.
받아 적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인도에서 들어온 계산법과 페르시아의 전통이 그리스 체계와 섞이면서 기술이 늘어납니다. 지금 쓰는 용어 가운데 아랍어에서 온 것이 적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이름이 아부 마샤르(787~886년)입니다. 바그다드 궁정에서 활동했고, 848년 무렵 쓴 "대입문서"가 그의 대표작입니다. 이후 몇백 년 동안 이 책은 점성술 입문서의 표준으로 읽힙니다.
톨레도에서 다시 라틴어가 됐습니다
12세기 에스파냐 톨레도는 아랍어 문헌이 쌓여 있는 도시였습니다. 유럽 각지의 학자들이 필사본을 찾아 몰려들었고, 1116년부터 1187년 사이에 100편이 넘는 과학과 철학 문헌이 아랍어에서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옮겨졌습니다.
아부 마샤르의 "대입문서"는 1133년 세비야의 요한이 라틴어로 옮겼습니다. 1140년에는 카린티아의 헤르만이 줄여서 다시 옮겼습니다. 수학과 의학과 천문학을 찾아온 번역가들의 짐 속에 점성술이 함께 실려 유럽으로 들어온 셈입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아부 마샤르의 책은 12세기 중반까지 유럽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되찾는 데 가장 큰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이 자기 철학의 뿌리를 아랍어 번역에서 되찾았다는 뜻입니다. 점성술 책이 철학사의 통로였다는 사실이 이 시대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내 차트의 열 행성 보기700년을 한 표로 보면
알렉산드리아 —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가 "테트라비블로스"를 씁니다.
바그다드 — 9세기에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옮겨지고, 848년 무렵 아부 마샤르가 "대입문서"를 씁니다.
톨레도 — 1133년 세비야의 요한이 라틴어로 옮기고, 1140년 카린티아의 헤르만이 줄여서 다시 옮깁니다. 1116년부터 1187년까지 과학과 철학 문헌 100편 넘게 이 도시에서 번역됐습니다.
한 줄로 줄이면 그리스에서 시작해 아랍어를 거쳐 라틴어로 돌아온 여정입니다. 유럽 점성술은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니라 되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휘가 두 겹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을 뜯어 보면 이 여정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열두 자리의 이름은 그리스와 라틴에서 왔고, 하우스의 구조도 헬레니즘의 것입니다. 각의 뼈대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리한 그대로입니다.
반면 중세 유럽 점성술이 즐겨 쓴 세부 기법 상당수는 아랍 쪽에서 들어왔습니다. 유럽 점성술은 그리스에서 물려받아 아랍에서 자란 것을 다시 받은 것이지, 한 자리에서 이어져 온 것이 아닙니다.
별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데바란, 알타이르, 베텔게우스처럼 알로 시작하거나 낯설게 들리는 이름이 많은데 대부분 아랍어에서 온 것입니다. 밤하늘의 밝은 별을 부르는 이름 상당수가 이 700년의 흔적입니다. 점성술만 실려 온 것이 아니라 하늘을 부르는 말 자체가 함께 왔습니다.
번역과 함께 계산표가 왔습니다
번역이 옮긴 것은 해석만이 아닙니다. 더 무거운 짐이 함께 왔습니다. 행성의 자리를 구하는 계산법과 그 결과를 적어 둔 표입니다.
차트 한 장을 세우려면 그 순간 일곱 별이 황도 몇 도에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매번 하늘을 올려다볼 수는 없고, 밤이나 흐린 날에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계산으로 구해야 하고, 계산에는 표가 필요합니다.
이 표를 만드는 일이 당대 수학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점성술이 유럽에서 학문 대접을 받은 것은 그럴듯한 말을 해서가 아니라 이 계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몇 없었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는 정점이었습니다
번역이 끝난 뒤 유럽에서 점성술은 빠르게 자리를 잡습니다. 대학이 가르쳤고, 왕과 교황이 궁정 점성가를 뒀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차트를 보고 시술 날짜를 정했습니다. 피를 뽑을 날을 고르는 데 달의 자리를 보는 것이 당시 의학의 표준 절차였습니다.
이 시기 점성술은 미신의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하늘의 운동을 계산할 줄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계산은 당대 최고 수준의 수학이었습니다. 점성술을 하려면 천문력을 읽을 줄 알아야 했습니다.
바로 그 계산이 다음 세기에 점성술을 떠납니다.
천문력에서 오늘 행성 자리 보기이 이야기가 당신의 하늘에서는 어떻게 놓여 있는지, 태어난 순간의 배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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