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별샘밤하늘로 돌아가기

실전 점성학

보이드 문 — 달이 약속을 비운 시간

· 읽는 데 4

회의는 열렸는데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고, 보낸 메일은 감감무소식이고, 산 물건은 어딘가 애매합니다. 점성술에는 이런 시간대에 붙인 이름이 있습니다. 보이드 문(void of course Moon) — 우리말로 옮기면 "행로를 비운 달"입니다.

달이 마지막 약속을 마친 뒤

달은 이틀 반마다 자리를 하나씩 옮기며 도는 동안 다른 별들과 쉼 없이 을 맺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리에서 맺을 각을 모두 마치고 다음 자리로 넘어가기만 남은 구간이 옵니다. 이 구간이 보이드입니다. 달의 수첩에 더 이상 약속이 없는 시간 — 몇 분 만에 끝나기도 하고 한나절을 넘기기도 합니다. 이틀 반에 한 번씩 반드시 옵니다.

전통 점성술, 특히 시작할 때를 고르는 택일 점성술(electional astrology)은 달을 일이 굴러가게 하는 손으로 봤습니다. 그 손이 잠시 쉬는 동안 시작된 일은 굴러가지 않고 미끄러진다 — 결론이 나지 않고, 계획대로 안 되고, 흐지부지된다는 것이 수백 년 된 관찰입니다.

피하는 일과 어울리는 일

보이드에 피하라고 전해지는 것은 결과가 굴러가야 하는 일들입니다. 계약과 서명, 개업과 출시, 중요한 첫 만남, 답을 받아야 하는 제안. 보이드에 시작한 일은 무산되거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이 전통의 경고입니다.

뒤집으면 어울리는 일도 나옵니다. 결과가 필요 없는 일은 보이드가 오히려 편안합니다. 하던 일의 마무리, 정리와 청소, 산책과 낮잠, 생각을 미루지 않고 그냥 쉬는 것.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이 빠진 시간이라 오래된 점성가들은 보이드를 하늘이 주는 쉬는 시간으로 쓰라고 권했습니다.

수성 역행과 자주 비교되는데 결이 다릅니다. 수성 역행이 몇 주짜리 계절이라면 보이드는 몇 시간짜리 물때입니다. 피해서 일정을 옮기기가 훨씬 쉽습니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길게

숫자로 보면 감이 잡힙니다. 달은 이틀 반마다 자리를 옮기므로 보이드는 한 달에 열두어 번 옵니다. 길이는 들쭉날쭉합니다. 몇 분으로 끝나는 날이 있고 열두 시간을 넘기는 날도 있습니다.

길이가 갈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달이 자리의 끝부분에서 다른 별과 각을 맺으면 보이드가 짧고, 자리 중간에서 마지막 각을 맺어 버리면 남은 구간 전체가 보이드가 됩니다. 하늘에 별이 몰려 있는 구간을 지날 때는 보이드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별이 드문 구간에서는 길어집니다.

평균을 내면 하루의 10퍼센트 남짓입니다. 깨어 있는 시간으로 치면 일주일에 몇 시간쯤 되는 셈이라, 모든 일정을 여기에 맞추기는 어렵고 큰 것 몇 개만 피하는 정도가 현실적입니다.

자리마다 다르게 읽는 전통

조금 더 들어가면, 보이드 자체보다 어느 자리에서의 보이드인가를 보는 전통도 있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점성가 윌리엄 릴리는 달이 황소자리, 게자리, 사수자리, 물고기자리에 있을 때의 보이드는 크게 해롭지 않다고 적었습니다. 이 자리들에서는 달이 편안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예외를 지키는 이가 있고, 자리를 가리지 않고 모두 피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규칙을 하나로 정해 놓고 자기 경험과 대조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규칙을 그때그때 바꾸면 무엇이 맞는지 영영 알 수 없습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볼 것인가

솔직하게 적어 두면, 보이드는 현대 점성가들 사이에서도 체감이 갈리는 기법입니다. 택일에서는 지금도 철칙으로 지키는 이가 많고, 일상에서는 참고 정도로 두는 이가 많습니다. 실험해 보기 좋은 방법은 기록입니다 — 유난히 헛돈 회의나 흐지부지된 시작이 있던 날, 그 시각의 달을 나중에 확인해 보면 내 체감이 어느 쪽인지 답이 나옵니다.

확인하는 법

보이드의 정확한 시각표는 계산이 필요하지만, 어림하는 요령은 간단합니다. 달이 자리의 끝자락(27~29도)에 와 있으면 맺을 각이 얼마 안 남은 상태라 보이드일 가능성이 큽니다. 별샘의 오늘의 하늘이 지금 달이 어느 자리 몇 도에 있는지 보여 주니, 큰 서명을 앞두고 한 번 볼 만합니다.

지금 달의 자리 보기

달의 리듬으로 2주 단위 목표를 세우는 법은 달의 위상 글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당신의 하늘에서는 어떻게 놓여 있는지, 태어난 순간의 배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하늘에서 보기 →

칼럼 목록으로